대학교 꼭 갈 필요 있나요?

우리는 심각한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살고 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지구온난화처럼 별 체감이 안되곤 했지만, 올해 서울지역 일부 초등, 중등 교육기관마저 폐교가 예정될 정도로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깊이 스며들었다.

줄어들고 있는 학령인구(국가통계포털)

폐교가 이루어지는 장소는 대학까지 확장되어 수많은 지방 대학들이 줄도산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지거국으로 불리는 주요 지방 국립대조차 매년 정원 미달과 많은 자퇴생들이 생기고 있으며, 서울교대 다음으로 인기 있는 교대인 경인교대는 올해 수능 전 과목 9등급 학생이 1차에 합격(결국 당사자는 면접을 포기하긴 했다) 하여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1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이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다. 대학 문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최상위권에게 체감될만한 일은 아니지만, 어정쩡한 위치에 있던 친구들은 대학 가기 용이해졌다(눈만 낮춘다면). 하지만 그런 위치에 있는 학생들은 대학교 진학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아니 가기도 쉬워졌는데 왜 고민을 하는 걸까?

대학을 나와야 혜택이 많았던 과거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요즘은 평범한 일반 대학교를 졸업해서 얻는 수 있는 메리트가 적어졌다. 블라인드 채용이나 고졸 특채 등 대학 졸업과 연관되지 않은 이점들이 존재하고, 전공과 관련 없는 일을 하면서 잘 살고 있는 많은 사례들이 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취업하는데 큰 지장이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쉬운 방법을 택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과 같은 중요한 사항도 예외는 없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대학 졸업장이다. 비난받을 만한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서울대생이 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저학력자들은 아주 말로 담지 못할 취급을 받기도 한다(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귀인 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의 능력을 넘어 공부와는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인격까지도 대학 간판이라는 녀석이 자동으로 그 사람을 보정해 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대학을 가는 것이 아직까지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나는 삶을 피와 땀, 혹은 운으로 카드를 얻고, 얻은 카드를 적절한 상황에 사용해가며 한차례 한차례 버텨나가는 생존게임으로 빗대는 것을 좋아한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 지인 소개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다. 이 상황에서 나는 외모, 유머, 능력 등 살아오면서 만든 카드를 적절하게 사용할 것이고, 그 결과로 역경을 극복하고 이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낼만한 적절한 카드가 전혀 없다면 결국 이성과 맺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좀 더 심각한 선택이 필요한 경우, 즉 부모님이 큰 병에 걸려 큰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이 상황에서 내가 낼 수 있는 카드가 전혀 없다면..?

와일드 카드로 아무렇게나 사용가능한 조커

많은 트럼프 게임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극적인 재미를 주기 위한 장치로 와일드카드가 존재한다. 보통은 조커로 불리는 카드가 이런 역할을 맡는다. 내가 불리한 상황에 아무렇게 써먹을 수 있는 카드인 셈이다. 대학 졸업장도 마찬가지다. 인생이라는 생존게임에서 언제든지 써먹을 수 있는 카드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비록 대학 졸업장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내가 정말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참담한 상황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열어줄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다.

나는 대학교에 꼭 가야 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 본인이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자기 자신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소명 없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면, 나는 대학에 꼭 가야 된다고 이야기해 줄 것이다.

내신이냐 수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새로운 학기를 마주하기 전, 학생들이 항상 고민하는 단골 주제는 거의 같다. ‘내신? 수능? 어떤 방향으로 공부해야 나에게 유리할까?’ 이 고민은 고등학교 3학년으로 진학하는 학생들 말고도 이르면 중학생까지 다양한 나이의 학생들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곤 한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으로 진학하는 학생 중에서도 성적이 애매한 경우 더욱 더 깊은 고뇌에 빠지곤 한다.

엄마 나 머리 깨질거같아(공부로 깨지는건 아님) 좀 쉴래(쉬었다 안함)

‘1학년 때 이미 내신 망쳤는데 그냥 지금부터 수능 준비해?’

‘내 모의고사 성적 생각하면 정시는 더 답이 없을 것 같은데…’

‘수능까지 계속 공부할 자신이 없는데… 그게 인간으로써 가능한 일인가’

‘아 진짜 2학년 올라가면 생기부 관리랑 내신 공부 좀 열심히 해야겠다’

‘그런데 내가 내신 열심히 준비해봤자 달라지는게 있을까?’

등등 본인이 마치 닥터스트레인지라도 된 것처럼, 머리 속으로 수많은 망상 시뮬레이션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며 책상 앞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아니 책상 앞에서 저런 생각이라도 하는 학생들은 양반이다. 어정쩡한 학생들의 대부분은 이미 포기하고 공부를 하는 시늉만 하기 때문이다. (어정쩡한 학생들은 다른 글에서 생태를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보이지 않는다.

책상 앞에서 고민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는 것은 중하위권 학생들의 고약한 특징 중 하나로, 최대한 적은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얻고자 하는 효율성을 추구하는(사실은 썩어 비틀어진) 마음에서 비롯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놀부도 백기도 흔들고 갈만한 저런 마인드 셋으로 좋은 성적을 거뒀을리 만무하다. 날로 먹고 싶어서 요리조리 궁리하고 있을 시간에 책 한 장을 더 넘겨봤으면 내신 등급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렇다 무한으로 수렴하던 고민에 대한 실마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논란의 근원인 내신과 수능의 양자택일 문제로 돌아가보자. 이 문제의 답은 참 쉽다. 바로 내신과 수능 둘 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것이다. 엥? 이게 뭔 소린가 싶겠지만, 사실 입시는 태도의 싸움이다. 수시와 정시의 싸움이 아니다. 본인에게 주어진 상황에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을 살아가는 지에 달려있는 것이다. 내신 준비와 정시 준비를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으로 유연하게 같이 이어나가야 목표하는 대학에 가까워질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그 결실을 맺는 것. 쉬운 진리인 만큼 빠르게 깨달을 수록 좋다. 물론 쉬운 만큼 실천은 배로 어렵다. 인생 쉬운 것 하나 없다. 글을 읽는 본인이 원하는 학교가 아닌, 적당한 학교로 타협하겠다면, 평소처럼 적당히 하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평생 적당히 타협하면서,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들 다 포기하면서, 사실은 누구보다 포도를 갈망하던 여우의 마음을 가지고 살면 된다. 화이팅.

누칼협? 공부를 왜 하는지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